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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작문] 너 자신을 알라, 스물언덕의 고민

by Doer Ahn 200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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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영일 네 가지 중요한 심리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그의 심층기반에 대한 분석이며 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게 해준다.

 

1.과거의 관계소외 컴플렉스

 

-심층기반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이야기다. 여느 형제들과 다름이 없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유난히도 형과 다툼이 많았다. 형은 종종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함께 하자고 강요하였다. 그것은 주로 오락 게임과 비디오 테잎구매를 위한 용돈지출 등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형은 부모님을 속이고 용돈을 모았으며 나는 그런 행태가 참으로 못 마땅했다. 물론, 나 역시도 오락 게임 놀이와 비디오 시청을 즐겼다. 하지만 거기에 용돈을 쓰는 것은 왠지 아까운 일이었다. 우리는 그 부분에서 자주 의견 충돌을 겪었다결국 마지막까지 내가 지출을 꺼려하면 형은 본인이 전액을 부담해서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그의 성취물을 즐겼다. 그가 그것을 즐기는 동안, 나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했다. 아직도 나는 좁은 방문 틈새로 형과 그의 친구들이 감상하던 비디오를 몰래 지켜보던 시간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항상 어두운 방구석의 기운과 몰래 보았다는 죄의식들을 동반하고 찾아오기에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너무나도 무섭다. 유년의 기억은 고립에 대한 공포증을 낳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중학교1학년 때'정재'라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약속하진 않았었지만 방과 후 항상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수업이 마치기를 기다리게 되었고, 그 역시도 내 수업이 마치기를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나는 사실 그와 함께 집으로 가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그는 친절하고, 유쾌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불편했다. 이윽고 나는 이전의 암묵적인 약속과는 다르게 애써 그의 눈을 피해 도망가듯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된 후 그는 내게 말했다. '내 인제 니랑 친구 안할끄다'. 그는 무척이나 당당하게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를 잃은 것에 마음이 아팠고, 그를 볼 때마다 죄의식이 들었다.하지만 그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나 용기는 없었다. 나는 왜 그를 피했을까.

 

초등학교 시절도 내내 그랬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형과 결코 유쾌한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었다.그와 나는 별개의 존재였다. 그리고 그 차이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슬프다. 가정에서의 그런 현상들은 학교에서도 잘 나타났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다. 형과 집에 있으면 불편해져 버리는 느낌이 내 가슴에 습관적으로 들어와 박혀 버렸던 걸까. 나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함께 앉아야만 하는 짝이라는 존재가 내겐 굉장히 불편했다. 초등학교5학년 때 '혜경 선생님'께서 너무 답답한 나머지 내가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누구와도 짝을 하도록 해 주겠다고 설득하셨지만, 그리고 함께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지만..나는 그녀의 정성 어린 설득의 마지막에 '혼자 앉을래요'라는 말로 응수를 하고 말았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 유년기부터 가정에서부터 받아온 심리적 공포증의 결과물이다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욕망은 어떻게든 표현은 되었다. 나는 우등생에게는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그에 수반되는 주위의 칭찬을 즐겼다. 부러워해주는 친구들도 좋았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그런 건 결국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계산으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계산으로 나를 떠날 수 있다. 그건 이 세상의 가벼운 메시지가 담긴 중후한 논리다.

 

나는 그렇게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나에 대한 컴플렉스로 보냈다. 중학교1학년 때는'태길', '승현'이라는 사이 좋은 두 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난 항상 그들에게 있어서 제 3자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어도 나는 혼자라는 기분을 느꼈다왠지 내가 사는 세계는 그들이 사는 세계와 다른 것 같았다.나는 그들이 주고 받는 일상적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왜 그게 유독스럽게도 내게는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들은 어쩌면 형과 형의 친구들을 표상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중학교2학년 때는'재규', '준호'사이에서 그런 컴플렉스를 받았다. 그리고 중학교3학년 때는'상도','형진'사이에서 다시금 그런 컴플렉스를 느꼈다. 그들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는 듯 보였다그래서 난 그들과 어울리는 와중에도 난 단지 그들에게 짐 덩어리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1학년 시절 학원에서'영길', '준호'의 사소한 장난에 울면서 학원을 뛰쳐 나갔던 내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들이 사과하기 위해 우리 집을 방문했는데도 나가서 그들을 맞아주지 않았다. 무서웠다. 버림받는 것이. 왕따가 되는 것이. 그들을 믿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차라리 일찌기 혼자이기를 택했다.

 

-이성관계

그런 나에게도 어김없이 사랑은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미팅으로 만났던 그녀는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더 많이 알고 싶었다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녀의 집에서 요리도 해먹고 싶었고, 함께 나란히 앉아 공부도 하고 싶었다. 그녀를 안고 싶었고,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지금도 난 이승환의 노래와 김동률의 노래를 모창한다. 그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두 가수다. 김동률의 목소리를 '거짓말을 해도 믿을 것 같은 목소리'라고 표현했던 그녀의 말은 아직도 가끔 머릿속에서 메아리 친다. 하지만 그 사랑도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3학년 시절. 나를 떠나갔다. 왜 떠나갔을까그 답을 그녀에게서 듣지는 못했지만. 난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난 원래 사람사귐이 서툴다. 애정결핍증세도 가지고 있다. 경우도 없고. 상식도 없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대학교 입학 후 부산의 재수학원가에서 그녀가 어떤 남성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장면과 함께 커져가는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골목길로 숨어들었고, 그녀의 뒷 모습에서 아픔의 기억을 다시금 훑어야만 했었다나는 그렇게 첫 번째 사랑에서 이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더 크게는 사람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고 말하고 싶다

 

두 번째 사랑은 대학교1학년 때 찾아왔다. 당시 그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서 러브 콜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포항공대의 딜레마다. 그녀는 가장 긴 손가락으로 나를 선택했지만 다른 네 개의 손가락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상황을 이해했고,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나아지길 바랬다. 내 마음이 그녀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면 그런 번민은 이내 흩어져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날 선택한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나를 정리해 버렸다왜 그랬을까. 역시 그녀에게서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난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사람사귐이 서툴다. 애정결핍증에 시달리며, 경우도, 상식도 없다. 지금도 그렇다.

 

이후의 내 모든 사랑은 너무나도 가벼워져 버렸다나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수 없었으며 그저 본능만을 갈구했다. 지저분했다. 여성을 한 사람으로 대하기 조차 힘든 시기가 있었다. 잔인하고, 냉정하게 그렇게 삶을 살았다. 도덕적이지도 못했고, 성실하지도 못했다. 내 앞길에 방해가 되는 건 용서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미쳐버렸다. 본래 서투른 사람사귐에 대한 컴플렉스는 서투르지 않은 사람사귐에 대한 노력과 따뜻한 정성으로 극복되었어야 할 것이지만, 나는 그런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처절하게도 어리석었다(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 죄 값을 치르고 싶다). 오히려 나는 다시 새로운 딜레마에 빠져들어감으로써 그 컴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바로 수퍼맨 컴플렉스다.  

 

2.고립된 자아 니 맘대로 가자,수퍼맨 컴플렉스

나는 개인적으로 언어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언어공부는 언제나 내게 실감나는 즐거움을 선물해준다. 한 마디를 배워서 밖으로 나가면 그 한 마디를 그대로 써 먹을 수 있다. 항상 타인과의 관계를 동반할 때 완성되고야 마는 멋진 공부다. 그리고 이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내 심층기반의 일차적인 부산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의13천 인구와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생긴다. 중국어를 배우면 중국의 무거운 인구 덩어리와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생긴다. 영어도. 불어도. 스페인어도. 모든 언어가 다 그렇다. 그렇게 먼 미래의 기회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쉽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다. 그래서 나는 언어공부가 좋다. 사랑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언어공부임에도 불구하고 그 심층에는 굉장히 역설적인 요인이 깔려있다. 사실 언어를 습득하는 스타일은 본질적인 내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나는 방 안에서 혼자 열심히 말하고, 듣고, 읽고, 쓴다. 방안에서. 혼자서. 그리고 밖에 나가서는 피상적으로 그 실력을 검증해본다. 언어공부는 원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가 힘든 것이었던가. 굳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난 결과적으로 혼자 공부하는 것을 즐긴다. 개인화된 습성이다. 철저히 고립된 개인화된 공간에서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는 수퍼맨으로 칭송 받기를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수퍼맨이 되고 싶어하는 내 성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난 결코 수퍼맨스럽지 못하다. 오히려 소외된 마초맨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꾸준한 운동을 즐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그 운동의 내용을 보면 지극히 개인적이다. 웨이트 트레이닝. 마라톤. 그리고 심지어는 축구나 농구를 하더라도11승부를 즐긴다. 가끔 단체 농구나 단체 축구를 즐기기도 하지만11상황보다 실감나는 성취감을 느껴본 적은 없다그렇게 나는 본능적으로 사회로부터 나를 소외시키고 있다하지만 반동적으로, 난 이 소외감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다. 하지만 이제와서 되돌아 보건데, 그 노력은 대부분이 참 어설픈 방법들이었다. 내 행동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있자면 정말 잘하고 싶은데 어찌할 줄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행태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애정결핍증세에 상식도 없고, 경우도 없는 사람. 실제로 나는 이러한 꾸준한 운동으로 인해 얻어지는 육체적 만족과 부러움의 시선에 올라 타는 마초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사회와 시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일상대화 결핍 증후군

평소 지내면서 감지할 수 있는 내 부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결정적인 부분은 일상대화 결핍 증후군에서 포착된다. 나는 정말 씩씩하고 건강하다. 항상 용기 있어 보이고, 자신감에 넘쳐 보인다. 인사도 멋진 목소리로 무척이나 잘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항상 불편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다. 극히 일부분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는 새로운 친구들이 곁으로 다가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또한 보통의 친구들이 재미있게 웃고 떠드는 대화에는 도무지 참여할 수가 없다. 특히나 여학생들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나는 가벼운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여전히 그렇다. 도대체 왜 그럴까.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거리감을 느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내가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쇼-프로, 드라마,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곳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함께 몰려 다니며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등을 플레이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낄 수 없었다난 그 게임들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고 싶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의미. 카트라이더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의미하지만 친구들은 내게 그 무거움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어쩌다가 내게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 무거워지기 시작한 걸까. 심각하다.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 역시 가벼운 대화를 통해서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알고 있지만, 나는 보통 곧장 '도를 아십니까'를 묻는 수준으로 발전해 버리곤 한다. 혹시 내겐 속히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조급증이 있는 건 아닐까. 빨리 서로를 이해해야 그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오히려 남들에게는 더 상처를 주고 있는 걸까실제 난 습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에게 내가 관찰한 바를 이야기해주곤 한다. 물론, 그건 가볍게 듣고 넘기기가 힘든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내 이야기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누군가에게 쉽게 평가 받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결국 난 독서를 즐기면서 책의 저자와 대화하는 것을 즐기게된다. 그곳은 항상 심각한 대화가 가능한 세계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결국 고립의 과정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4.단체생활 기피 증후군

절대적인 고독과 소외감을 끌어 안아야 하는 숙명적인 나날 속에서도 실상 나는 그 안에 멈추어서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 깨끗하지 못한 느낌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래서 가끔 사회활동 참여로 그 길을 열어보고자 했다무의식 중에 내 몸이 탈출 호르몬에 반응한 거다. 사람들 사이에 섞임으로써 소외감을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항상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단체와 사회활동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5학년10. 고등학교2학년10. 15분반 모임. CTRL-D. 동아 고등학교. 새내기배움터 준비위원회. 교내 축제 준비위원회. 울산 자원봉사자 모임. 부산 자원봉사자 모임. 청소년단체 협의회. APEC. 해병대. Contiki....그리고 난 그 단체 속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평가는 지금 스스로 내리기가 참 힘든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단체 속의 특정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자세히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리라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난 어떤 단체에서 생활을 하든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유지한 거리는 아니다. 무의식적인 몸의 행동 양식이었다. 나는 여전히 일상언어 결핍 증후군에 시달렸고, 남들은 주지도 않는 소외감을 혼자서 다 받고 있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정말 그랬다. 나의 대화는 항상 부자연스러웠다. 내 행동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섞이기가 힘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쉽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특히 상처에 예민한 사람들은 더욱 그랬고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유년시절부터 나는 어느 단체에 속해있던지 나는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왔다. 초등학교 때는 혼자 앉겠노라고 선생님께 버럭버럭 우겼다. 고등학교 때는 우열한 성적 때문에 억지로 반장이 되었고, 책임감이라곤 전혀 없이 괜한 열등감에만 시달렸다. 대학교 동기들의 분반 모임에서는 활발한 척하는 성격으로 분반장이 되었지만, 우리는 결국 성공적인 조직성을 갖추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이끌기에 부족한 인물이었다.춤 동아리에도 나는 이내 싫증을 냈다. 춤에 싫증을 냈던 걸까. 아니다. 나는 섞이기 힘든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잘 어울리고 있었건만.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이렇게 몇 년 동안 함께 잘 지내고 있건만. 나는 그들과 어울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내 어린 시절의 망령. 나의 역량 부족 탓이다. 이제서야 그걸 깨닫는다. 대학생활 동안 나는 오히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이루지 못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주력했는지 모른다현재 그 결과는 정말 만족스럽다.한 사람만 좋아하기정말 소중한 사람 만들기. 그런 마음 가짐 안에서 나는 대학에서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생활을 모두 통틀어 가장 후회되는 한 가지는 바로 꾸준히 활동한 동아리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군중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그 상황을 기피하려는 증상은 나를 한 단체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연 졸업 후 학교를 다시 찾아오게 된다면 내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어디가 있을까

 

집단 생활에 이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사람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걸 누군가 본다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적당히 입만 살아있는 녀석비겁하다

 

5.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자신의 강한 점은 강하게 살리고,약하고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은 억제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장기적 태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약한 부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고뇌하는 건 그저 작은 꼬리표로써 남겨두어야 한다. 자신의 뿌리와 그릇을 거스르며 사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들을 모아서 그 안에서 최선을 찾자. 다만, 그 최선이 정말 큰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최선책이 될 수 있기를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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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난 지금 내가 가진 강점들을 진정 나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외향적인 성격. 당당한 태도와 자신감. 이런 것들은 혹시 본질적 자아를 덮기 위해 형성된 '현상'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당장 벌거벗어야만 한다. 껍데기를 벗어야만 한다성장과정에서 겪은 소외에 대한 충격과 그 잔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너무 강렬하기에 그것들을 쉽게 '현상'이라고 이야기해 버리기에는 뭔가 씁쓸하다.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당당한 모습 이면에 개인적인 소외감을 품고서. 이렇게 살고 있다.  

 

Special Thanks to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에 긍정적인 힘이 되어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Newly Updated 2009.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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