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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남들이 부러워하는 1등보다는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1등이 되자!

by Doer Ahn 2011. 5. 10.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선생님이 말했다. '너의 경쟁자는 교내에 있지 않다. 너의 경쟁자는 과학고 애들이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부해야 한다.' 이유는 성적이 학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이란다. 선생님 이야기에 잠시간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 나는 학교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친구와 경쟁하기는 싫거든!!’ 하지만 현실은 현실. 1등을 노리는 2, 3등 친구의 질투심은 친구에 대한 내 믿음을 잿빛으로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친구가 되기 힘들었고,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이상하게도 친구처럼 잘 지냈다. 무엇이 우리 관계를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다음 국어 시간까지 기미독립선언서 두 페이지를 외워오라고 지시했다. 나와 천재로 불리던 잠꾸러기 부반장에게만. 두 가지 측면에서 못 마땅했다. 암기의 강요. 불필요한 경쟁 조장. 그래서 저항의 표시로 당당하게(?) 외우지 않았다. 다음 국어 시간, 난 선생님이 지시사항을 기억 못하시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곧장 우리를 일으켜 세워 암송을 지시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나는 두 세 문장도 채 제대로 암송하지 못하고 어버벅거리고 말았다. 그가 재촉했다. “다시!” 나는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암송하고는 멈췄다. 몸에서 기운이 추욱 빠지는 듯했다. 그러자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시!!”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같은 반복을 하고는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비꼬우며 말했다. “왜 안 외웠나?” 심장에서 ‘외우기 싫었어요’라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외우기 불가능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짧게 말했다. “나와!” 나는 의례적으로 종아리를 걷어 올렸다. 그는 나를 앞에 세워 놓은 채 부반장에게 암송을 지시했다. 그러자 잠꾸러기 부반장 녀석은 꿈에서 조선시대를 갔다 왔는지, 두 페이지를 쉼표 하나 틀리지 않고 몽땅 암송했다. 한쪽은 망했고, 한쪽은 성공했다. 분위기는 분명해졌다. 부반장이 암송을 마치자, 선생님은 몽둥이를 왼손으로 잡았다. 그는 검도를 3단까지 수련한 달인이라 진심으로 화가 나면 핏줄선명하게 굵은 왼손으로 몽둥이를 잡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당시 그 광경을 처음 본 급우 모두가 떨었음이 분명하다. 그 시절엔 왜 스마트폰이 없었을까? 내 마음 속의 비나이다 비나이다 간절한 소망과는 별개로, 강력한 체벌이 시작되었다. 종아리에 라면을 끓여도 괜찮을 정도로 열이 나는 듯했다. 이마에는 고통의 땀방울이 피처럼 맺혔다. 계속 때리면서 그가 물었다. “왜 안 외웠다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딱히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키는대로 답했다. “외우기 불가능했어요!” 그러자 그의 매질은 더욱 거세어졌다. 이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고 지기 싫다는 오기까지 생긴 나는 이를 악 깨물고 거친 숨만 내쉴 뿐, 조금도 잘못했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부반장 녀석이 미워지기까지했다. 그 사건 이후, 암기과목에 흥미를 잃은 나의 학교 종합 성적은 1등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등을 바라보는 2등의 불타는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외우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외우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1등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나는 학교 성적으로 1등하겠다는 갈망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나에게 굉장히 많은 여유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그 당시, 그것은 내 인생을 약간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결정으로 인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결정이 있던 당시.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에겐 이성친구가 생겼다. 나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지라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와 절친한 친구들은 엑스타시라는 클럽을 결성하고 시도때도없이 노래했다. 온 몸을 토해내듯 노래하고, 그것으로 인정받는 게 즐거웠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지라도.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밤새도록 친구들과 술 마시기를 즐겼다. 술 마시며 친구되고, 공감 속에 하나되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지라도.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스스로가 인간적으로 좀 모자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얻어 맞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인 친구들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일지라도.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다니던 학교보다 타 지역 다른 학교 수업을 원정 다니며 듣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내 가슴을 쥐어짜는 강렬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길이었을지라도.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며, 안정적이기도 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버리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직장을 선택했다. 그게 편안한 삶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멋진 삶일거라고 판단했다.

남들이 모두 지향하는 1등. 누구나 부러워하는 출세. 일반인들이 모두 열망하는 길에서 떠난 삶을 살기 시작한지 약 10여 년. 나는 오늘(2011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20대, 그리고 가장 행복한 20대의 삶을 살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1등은 아니지만,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1등이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일, 그리고 가급적이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과감하게 내려놓고 사는 이 삶의 방식은 나를 무한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어른이 진지하게 놀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직업이 된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는대로 살자.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우리는 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세상을 디자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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