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력으로 1983년 1월 9일 출생이다.
어머니는 가끔 내게 '니랑 행님은 완전 자연산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 형제가 둘 다 이모집 마루바닥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부분 동년배 친구들은 병원이나 조산소에서 태어났다는데, 우리 가족은 여러가지 사정으로..그런 것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형은 6월, 여름 출생이다. 그 시기의 마루바닥은 지저분할지언정 따뜻하기는 했을거다.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1월에 출생했다. 친지들은 그 날을 '드~릅게 추운 날'이었다고 표현하고, 어머니는 또한 그 날을 두고 '추워서 죽는지 알았다'고 회상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자궁 밖으로 나오던 나는 온 몸이 시퍼런채로 나왔었다고 한다. 한파는 가난한 집안의 지붕 아래 뿐만 아니라, 가장 따뜻했어야 할 궁전 속까지 침습해 있었던 것이다.
내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던 고통으로 입이 돌아가셨다. 젊고 꽃다워야 했을 시절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신거다. 지금은 입이 다소 제자리를 찾으셨지만. 어머니는 줄곧 그 기억의 편린을 짊어진 채 살아 가신다. 때로는 컴플렉스로. 때로는 추억으로.
해마다 이맘 때 즈음이면 어머니는 심각한 몸살과 감기를 앓으신다. 이 증상 또한 내가 태어난 이후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1983년 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허름한 판자집, 살을 에는 시린 마루바닥에서 시작된 출산. 지금까지도 당신의 병마가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까닭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몸의 관성일까. 아니면 그 순간을 추억하고픈 당신의 본능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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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부산을 내려갔더니, 어머니는 집 앞 골목에 화초들을 기르고 계셨다. 조악한 공사 후 거리의 상처로 남은 틈새들. 어머니는 그 틈에 거름을 옮겨 넣고, 씨앗을 심어 생명을 길러 내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이 녀석들이 무럭 무럭 화창하게 자라지 못하지만, 여름에는 골목 한 편으로 화사함이 넘쳐 흐른다. 틈새에서 피어나는 희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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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삶의 작은 틈새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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