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경쟁에서는 타인을 관찰하지만, 삶의 경쟁에서는 자신을 관찰한다.

이 블로그를 통해 저 스스로 저를 더 관찰하고자 합니다. 저의 '생각과 행동', 사진을 통한 일상의 기록 '안단테 : 조금 느리게', 뜻을 이루는 과정의 기록 '기업과 투자' 세가지 분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

관찰하고, 뜻을 찾아, 설명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의 흐름과 행동 양식을 기록하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근원을 밝히고자 <생각과 행동>을 만들었습니다.

안단테 : 조금 느리게

이 순간 숨쉴 수 있고, 하늘을 느낄 수 있으며 디딜 수 있는 땅과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제 일상의 기록을 <안단테 : 조금 느리게>로 공유합니다.

기업과 투자

큰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정말 즐겁고 멋진 일입니다. 하나의 방향으로 정진해나가는 현실의 디테일을 <기업과 투자>에 기록합니다.

어느 인터뷰

깊이 고민하고, 긴 시간에 걸쳐 정성들여 답변했던 한 인터뷰 글을 소개합니다.

왜? 사는가?

강연, 투자, 프레지 제작, 외국어 학습법 등 현재의 업을 선택한 이유를 밝히는 글 모음입니다.

강연 영상

토크 콘서트 화통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했던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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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거부..그러다 항복.

2012.03.05 13:36 생각과 행동




고등학교 때, 내 학업의 가장 큰 고민 사항 중 하나는 '언어 영역' 성적이었다. 그 시절 나는 교과서 이외의 책을 긴 호흡으로 완독한 일이 거의 전무했다. 항상 수업 시간에 뒷자리에 앉아 무협지를 읽어대는 친구들이 언어 영역 모의고사 성적을 나보다 잘 받으면 난 은근한 속으로 그들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들을 좇아 무협 세계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돈도 시간도 없었다. 아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양한 과목의 교과서를 무한 반복 암기하면서 높은 내신 성적과 우등생의 품행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교과서 외에 독서를 하지 않는 습관은 관성으로 이어져 대학 입학 후에도 계속되었다.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는 건, 뭔가 불편했다. 나는 재래시장을 걸으며 아지매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일에 더 큰 쾌감을 느꼈다. 산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손등에 잡힌 주름이 책에 쓰인 어떤 글귀보다 더 현명해 보였고, 한잔 술이 한권 책보다 더 깊어보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책은 지식을 주지만, 사람은 지혜를 준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격언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아는만큼 편견에 사로잡힌다'는 논리로. 즉, 책을 읽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오히려 싱싱한 창의력으로부터는 멀어진다는 이성으로 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 친구들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방문 예정 지역의 역사와 주요 사적들을 꼼꼼하게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전 암기 학습 과정보다 직접 내 몸과 피부로 느끼는 현재의 사실에 입각해서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는 게 우월하다고 믿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말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선생들에 의해, 권위자들에 의해, 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지듯 양육되었다. 우리 안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독창적이고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그리고 명징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다독을 거부해왔었다. 정말 읽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책들은 끝내 항복을 선언하고 읽기는 했지만, 그 독서들이 나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단말마의 독서 후엔 포만감이 아닌 공허함이 남았다. 진지한 깨달음보다는 아는 척이 많아져 오히려 후회가 밀려왔던 적도 많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문득 내 삶에 휘둥겨 감겨왔다. 이는 쌩뚱맞게도 친구 송원이가 올해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송원이의 제안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른 친구에게 송원이의 말을 옮기던 중, 백두대간이란 말이 떠오르지 않는 바람에 '송원이가 태백산맥 가자던데?'하는 식으로 말을 해버렸던 것이다. 모두 웃고 넘겼다. 그러나 그 날, 괴이하게도 말 실패의 잔변감을 다른 방법으로 처리할 길이 없어 그대로 태백산맥 전권을 구매했다. 기왕 샀으니,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읽었다. 그러다 날이 밝았다. 그래도 더 읽었다. 책이 손으로 녹아들어 몸 속 깊이 동화되는 듯했다. 가슴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고, 분하고, 억울하고, 한스러웠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났다. 그 심연의 세계에는 '한()'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문학은 곧 내게 감옥이 되었다. 내친 김에 '한강', '아리랑', '로마인 이야기', '토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료마가 간다', '삼국지', '수호지', '사기열전', '중국의 붉은별' 등 고전들을 구비했다. 그리고 그들을 차례로 다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고전 속에서 나는 반복되는 인간사의 허망함과 진실을 목격했고, 지금 내 삶을 보다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되었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통해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한국의 근대사는 그저 한스러울 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망원경으로 바라본 기원전 로마에서, 우리 근대사와 유사한 혼미의 사태를 발견하고는 희망을 외쳤다. 누가 사태를 수습했을까? 정신없이 읽어내리다 만난 건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인물이었다. 유사하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혼미한 역사를 통합하고, 현실에서 비전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다 다시 굽이쳐, 수호지와 중국의 붉은별을 통해서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우리 삶의 실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과거에 현재가 있다. 더 깊이 읽을수록 더 새로워지고, 충격으로 멍해질 때가 많다. 혼자만의 직관과 관찰력에 기대어서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역사의 환희와 상실. 그리고 설레임.

이제 나는 고집스럽게 멀리하던 독서의 세계에 항복을 선언한다. "책은 지식을 주지만, 사람은 지혜를 준다"는 나의 기본 견지나 '아는만큼 편견에 사로잡힌다'는 주장은 협동적 타협을 통해 새로움으로 발돋움할 때가 왔다. 양서를 탐닉하고, 더 성장해야겠다.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디자인합니다. 

Dream Challenge Group

Doer 안영일(http://www.twitter.com/doer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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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Comments 11

  • 김경렬 2012.03.12 21:59 신고

    오랜만에 와서 봐도...음....역시...! (^-^) 요즘 저는 책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어떻게, 무엇을 나눠야 하는가? 등등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안영일씨처럼 그냥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겠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 Doer Youngil Ahn 2012.03.13 17:19 신고

      네^^ 선생님! 좋은 책들을 만나는 순간을 굳이 누군가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그야말로 적시. 그야말로 뜻밖'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은 책을 필요로 할 때에, 가장 뜻밖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이것도 또한 저는 자연스러운 운명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 2012.03.28 09:2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Doer Ahn 2012.03.27 23:18 신고

      안녕하세요!! ^^ 이렇게 제 블로그까지 방문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최근 질문 주신 내용에 대한 강연 문의가 폭.증.하고 있어서-_- 자료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사업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일주일 안에 1차적인 결과물을 제작할 예정이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파이팅!

  • 황진규 2012.05.12 10:28 신고

    조금은 정상인이 되었구나ㅋ축하한다ㅋ항복ㅋ

    • Doer Youngil Ahn 2012.05.13 13:29 신고

      ㅋㅋㅋ 정상인으로 한 걸음 다가가도 여전히 상태는 멘븅.

  • BlogIcon 양희성 2012.05.12 12:19 신고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영일님. 필승!

    • Doer Youngil Ahn 2012.05.13 13:29 신고

      부롸둬~! 쿠올!!! >.<

  • 강명원 2012.10.06 21:48 신고

    삶에 고뇌에 빠져 뒤늦게 사람과 독서에 관심을 갖는 이 시점에 늦은 시간 스터디
    돌아오는 길에 영일이가 생각나 검색하다가 이 글을 읽게 선택하여 읽게 되었는데
    매우 공감하는 글이구나

    • Doer 2012.10.07 00:34 신고

      부끄럽습니다. 형님^^;

  •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8.08.20 21:12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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